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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이야기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의 인생 이야기

민무과장 2019. 11. 2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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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very hard to fail completely if you aim high enough" - Larry Page

당신이 목표를 아주 높게 잡는다면, 완전히 실패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래리 페이지

 

모두가 잘알고 있는 구글.

본인이 IT 업계 종사자라면 한번 쯤은 들어봤을만한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의 인생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출처: 구글맵)

페이지의 출생

 래리 페이지는 1973년 3월 26일 미국 미시건주 이스트랜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칼 페이지는 미시건 주립 대학교 컴퓨터 사이언스 교수였고 어머니는 미시건 대학교 컴퓨터 강사였습니다. 집에는 컴퓨터와 과학잡지가 많았고 페이지는 여섯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페이지는 초등학교 숙제를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해 제출한 첫번째 학생이었고 어릴적 부터 재능이 있었던 페이지는 12살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전기를 읽고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발명가를 꿈구게 됩니다.

 

860(출처: 위키백과)

대학시절 페이지

1991년 고향인 이스트랜싱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시건대학교에 들어가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습니다. 페이지는 컴퓨터 엔지니어링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 태양 전지로 가는 차와 뮤직 신디사이저에 푹 빠졌습니다. (이후 테슬라 모터스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미시건 대학교 졸업 후 스탠포드 박사 과정에 들어가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했습니다. 페이지가 박사 과정의 연구 주제를 선정한 것 중에는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 자동차와 수많은 웹의 하이퍼링크를 토대로 한 더 나은 인터넷 검색 방법등이 있었습니다. 그의 논문 지도 교수 테리 위노그래드는 페이지가 인터넷 검색 분야에 집중하도록 지도 했습니다. 

 

검색 엔진의 시작, 페이지 랭크

1995년 3월 컴퓨터 박사과정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현재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을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 둘은 당시 처음으로 출현한 월드 와이드 웹 (WWW)의 연결 구조가 거대한 그래프란 걸 알고 분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페이지는 모든 월드 와이드 웹을 백업하고 인덱싱하는 방법을 연구하다 브린의 아이디어로 웹 속에서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웹 페이지를 찾아내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연구 프로젝트 이름을 '백럽(BackRub'이라고 붙였고 웹에 있는 문서를 긁어올 수 있는 크롤러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롤러 개발 이후 모든 데이터를 중요도 척도로 바꾸기 위해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개발 후 기존 검색 엔진보다 훨씬 좋은 것을 개발할 수 있다고 깨닫고 1996년 8월 구글 초기 버전을 스탠포드 대학교 웹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구글의 시작

 이후 1996년 8월 페이지와 브린의 구글이 탄생했습니다. 구글이라는 이름은 원래 10의 100승 무한함을 의미하는 '구골'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곳에서 사용 중이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어 구골과 발음이 비슷한 구글로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구글이 서비스를 시작하고 인터넷의 사용성이 크게 증가되면서 남는 PC 부품를 조립해 만들어 구동중이었던 서버로는 트래픽을 감당 할 수 없었습니다.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을 매각하려 했고 구글 검색엔진을 야후와 알타비스타 등에 매각하려고 하였으니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검색 성능이 너무 뛰어나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의 10만 달러 투자를 받아 1998년 9월 구글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구글 회사의 시작은 현 유튜브 CEO인 수잔 보이키치의 집 창고에서 시작하였고 페이지가 대표이사, 브린이 사장을 맡았습니다. 이후에는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와 람 슈리람 (벤처캐피탈리스트, 현 구글 이사), 데이비드 체리턴 (스탠퍼드 대학교수, 페이지와 브린의 은사)의 엔젠 투자자로 부터 투자를 받고 검색 기능과 광고를 통한 수익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출처: wibx950

폭발적인 성공 이후

구글의 성공 이후 IPO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페이지의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역량을 의심했고 페이지와 브린은 전문 경영인의 필요성을 느끼고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거쳐 노벨의 최고 경영자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를 회장 겸 CEO로 영입하였습니다. 이때까지 페이지와 브린은 연봉 1달러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2004년 8월 구글이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구글 주식 지분 약16%를 소유한 페이지는 세계적인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출처 : plat4om

돌아온 페이지

2005년 앤디 루빈의 안드로이드를 5000만 달러 인수, 2006년 주식 교환으로 유튜브 인수 후 2011년 래리 페이지는 구글의 최고 경영자로 복귀하고 에릭 슈미트는 회장으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알파벳 설립과 조직 개편을 발표하면서 페이지는 자신과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투자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인재와 기술을 찾는 동시에 구글의 조직을 간소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각 사업에 맞는 CEO가 해당 사업을 이끌고 페이지와 브린은 뒤에서 사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부분을 하고 페이지와 브린은 각각의 사업에 적합한 리더를 선발하고 성과를 평가하며 연봉을 정할 일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도 각 사업에 맞는 인재를 찾기 위해 공석인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페이지

올해 페이지는 45세이고 로봇 공학 컨퍼런스나 TED와 같은 행사에는 꼬박꼬박 참석합니다. 솔브포엑스 혹인 사이푸캠프같은 구글이 주최하는 다양한 학술 컨퍼런트나 세미나서 기술에 관해 편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합니다. 최근 페이지를 직접 만난 이들의 말에 따르면 페이지는 이직을 고려하는 몇몇 사람에게 구글에 남아달라고 당부했고 구글이 모험적인 창업가에게 매력이 없는 곳으로 변한 것이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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